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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뜰날’로 ‘쨍’했던 국민가수…우리 시대에 희망·응원 주고 떠나다
2025-02-08
HaiPress
국민 트로트 가수 송대관 별세
1967년 데뷔 오랜 기간 무명
‘해뜰날’로 10여년만에 스타
경제개발시기 국민 응원가로
90년대 트로트 사대천왕 인기
‘차표한장’ ‘유행가’ 등 대히트
절친 태진아 빈소 달려와 통곡
“그는 내 인생의 동반자였다”
‘해뜰날’ 등으로 큰 인기를 누린 트로트 가수 송대관이 7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79세. 송대관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해 1975년 ‘해뜰날’이 히트하며 인기 가수로 도약했다. 이후 ‘네박자’,‘유행가’,‘차표 한장’ 등 많은 히트곡을 내며 태진아,현철,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렸다. [사진 = 연합뉴스] ‘해뜰날’ ‘네박자’ ‘유행가’ 등 인기 곡을 불러 1990~2000년대 트로트 유행을 이끌었던 가수 송대관이 7일 별세했다. 향년 79세.
유족과 소속사 등에 따르면 고인은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아 치료를 받고 있었으나 이날 오전 돌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전 담도암으로 투병했으나 완치 판정을 받았고,이후로도 몇 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력이 쇠해진 중에도 지난해 ‘지갑이 형님’,2018년 ‘한번 더’ 등 신곡을 발표하며 무대에 올랐기에 가요계 동료·후배들의 안타까움이 더 크다. 다음주 KBS ‘가요무대’ 출연도 예정돼 있었고,이달 16일 방영 예정인 KBS ‘전국노래자랑’ 충남 당진시 편에 초대 가수로 촬영을 마쳤다고 한다. 그러나 고인의 생전 마지막 방송은 지난달 19일 방영된 ‘전국노래자랑’ 서울 성동구 편 초대 가수 무대가 됐다.
송대관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부를 수 있는,사람 사는 세상 이야기를 노래해온 가수였다. 194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67년 곡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했으나 직후 10여 년은 무명으로 보내야 했다. 그러다 1975년 발표한 ‘해뜰날’이 큰 사랑을 받으며 스타 가수로 올라섰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 안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라는 이 노래 가사는 그의 가수 인생은 물론 1970년대 경제개발 시대 국민들게도 꿈과 희망의 상징이 됐다.
가수 송대관의 빈소가 7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9일 오전 11시,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송대관은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1980년대 후반 귀국해 ‘정때문에’로 가요계에 복귀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특히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차표 한장’ ‘네박자’ ‘인생은 생방송’ ‘유행가’ 등이 히트했다. ‘쿵짝쿵짝 쿵짜작쿵짝 네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이별도 있고,눈물도 있네’(네박자),‘유행가 유행가 서글픈 노래/ 가슴 치며 불러본다’(유행가) 등 신나면서도 구수한 멜로디로 모든 세대가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됐다. 이런 음악적 성취로 1999년 MBC ‘10대 최고 가수왕’,2001년 옥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송대관이 고(故) 현철,태진아(72),설운도(67)와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린 것도 이 시기다. 특히 미국 이민 시기를 같이 보낸 절친 태진아와는 트로트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TV 예능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하거나 합동 콘서트도 열며 우정을 과시했다. 이날 빈소를 찾은 태진아는 “송대관 선배는 호남의 영웅적인 가수이자 대한민국 트로트계의 별 중의 별이었다”며 “내게는 한 명의 동반자나 다름없었다”고 했다.
고인은 2008~2010년 제2대 대한가수협회장을 맡아 가수들 권익 신장에도 앞장섰다. 1919년 3·1운동 때 전북 옥구군에서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했던 독립유공자 송영근 선생의 손자이기도 하다. 이날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셜미디어에 “대관아! 어떻게 이렇게 황망하게 가느냐”며 고인과의 일화를 추억하고 명복을 빌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