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일까 걱정했던 아들인데…하버드·예일대에서 편지가 날아왔다 [Books]

2025-02-08     IDOPRESS

더 비기닝 / 빌 게이츠 지음 / 안진환 옮김 / 열린책들 펴냄.


MS 창업주 첫 자서전


유복한 법조인 집안 출신


유년기부터 수학에 빠져


사색 즐기는 외톨이였지만


집요함은 타의 추종 불허


13살부터 코딩으로 돈벌고


하버드 2학년때 MS 설립

빌 게이츠. [사진 출처 = 빌게이츠 블로그] “아들,하버드에서 편지가 왔다.”

1973년 3월 어느 날 집에 전화했더니 봉투를 뜯는 소리가 들렸다.

“윌리엄 헨리 게이츠가 하버드 대학에 합격했음을 이 서한으로 증명합니다.” 변호사인 아버지가 읽었다. 빌 게이츠는 이미 예일대학교에 합격했고,한 달 뒤 프린스턴에서도 합격 통보가 날아올 터였다. 그는 명문대를 골라갈 정도로 유명한 수학 천재이자 이미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돈까지 벌고 있었다. 그런데도 하버드 입학은 시애틀 법조인 가족을 환호와 흥분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실로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가 하버드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를 세운 것이 그저 충동적인 일이 아니라 심사숙고한 결정이었으며 그만큼 성공을 확신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짐작게 한다.

최근 국내외 처음 출간된 게이츠의 첫 자서전 ‘소스코드: 더 비기닝’은 수학광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하버드 입학 후 MS 설립까지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다룬다. MS 경영과 성장 스토리를 담은 2부와 은퇴 후 지금의 삶과 재단 이야기를 담은 3부도 집필할 계획이라고 한다.

1955년 생으로 올해 칠순에 접어든 빌 게이츠는 손꼽히는 세계 최대 갑부일뿐더러 기술혁신과 전략적 사고,글로벌 영향력까지 겸비한 극히 드문 사례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필요성을 인식하고 개인용 컴퓨터 대중화를 이끌며 MS를 글로벌 시총 2위 기업으로 키웠다. 상류층에 가까운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자수성가형 대표 경영인으로 누구보다 시대의 요구와 사회적 변화를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게이츠는 수학과 컴퓨터에 미친 아이였다.

그는 흥미를 느끼는 것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반대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흥미를 느낀 것은 독서와 수학,혼자만의 사색 시간이었다. 게이츠는 “만약 오늘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면,아마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을 것”이라며 “부모님은 내가 내향적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야구팀,컵스카우트,다른 가족과 저녁 식탁 등 바깥세상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게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수학이야말로 쉽고 재밌었다고 말한다. 수학 천재가 컴퓨터 도사가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컴퓨터는 본질적으로 1과 0이라는 이진법을 이용한 계산의 수행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나 슈퍼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컴퓨터 내부에 탑재된 매우 강력한 프로세서에도 수학의 이진법은 그대로 적용된다.

사립학교 ‘레이크사이드’ 시절 운동과 거리가 멀었던 게이츠는 ‘외톨이’ ‘너드’로 불렸다. 그는 친구들로부터 ‘만사 관심 없는 머리 좋은 농땡이’로 기억되길 바랐다. 책가방을 일부러 들고 다니지 않았다. 대신 두 권의 교과서를 구매해 집에 한 권,학교에 한 권을 두고 다녔다. 밤에는 침실에 숨어 똑같은 교과서를 펼쳐 놓고 모든 이차 방정식을 풀고 또 풀었고,라틴어 어형 변화를 외웠으며 그리스 전쟁과 전투,신과 여신의 이름과 연도,역사를 복습했다고 한다.

지난달 AP통신과 인터뷰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빌 게이츠. [AP = 연합뉴스] 집요함과 노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968년 학교에 컴퓨터 단말기가 처음 도입됐다. 텔레타이프 기계 월 임대료와 시분할 컴퓨터 연결에 대한 시간당 사용료를 지급하던 때였다. 단말기 임대료는 연간 1000달러가 넘었고,컴퓨터 사용료는 시간당 8달러였는데,당시 아무도 물건 사용법을 몰랐다. BASIC 프로그래밍 언어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던 때였다. 게이츠는 컴퓨터실에서 살았는데,열세 살의 나이로 최초의 코딩(프로그래밍)을 작성했다. 틱택토 게임와 달 착륙 게임을 실행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때 MS를 공동 창업한 2년 선배 폴 앨런과 친해졌다. 다방면에 능통한 르네상스 맨이었던 앨런은 승부욕을 자극했다. “빌,네가 그렇게 똑똑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한번 해결해봐”

시애틀에 있는 ‘C-큐브드’라는 신생 벤처 회사가 게이츠와 앨런 등 어린 프로그래머들에게 컴퓨터 버그를 발견하고 보고하면 DEC 컴퓨터에 무료로 접속할 수 있게 해준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게이츠는 한밤중에 집을 몰래 빠져나가 프로그램을 코딩하고 디버깅하고 버그 보고서를 작성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급여 관리 프로그램,자동 교통량 집계 등으로 용돈벌이도 했다.

맬컴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얘기하는데 소프트웨어 분야의 대표적 사례로 게이츠를 꼽았다. 게이츠는 “처음에 500시간이라는 그 행운의 컴퓨터 무료 이용 기회가 없었더라면 다음 9500시간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하버드에 입학하고 나서야 자신의 수학 재능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1학기 성적으로 B+를 받은 후였다.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는 인식이 깨졌다. 그는 “탁월한 수학 두뇌를 가졌지만 최고의 수학자가 될 수 있는 통찰력의 재능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주는 있었지만 근본적인 발견을 해낼 능력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가 반신반의하던 컴퓨터에 삶의 전부를 건 건 1974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앨런이 기숙사 방으로 뛰어와 “프로젝트 돌파구! 상업용 모델과 맞먹는 세계 최초의 미니컴퓨터 키트”라는 제목의 잡지 ‘파퓰러 일렉트로닉스’ 1975년 1월호를 보여줬다. 개인용 컴퓨터 시대가 활짝 열리고,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그의 기대가 확신으로 바뀌었다. 운명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그는 고향 시애틀로 돌아가 MS를 설립한다.

이 책은 한 수학 천재가 열정과 노력까지 겸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부모의 재력과 도움,최첨단 미국 학교의 인프라까지 더해질 때 세상을 바꿀 혁명이 교실과 기숙사 방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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