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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대중의 취향을 반영하지 않는 예술은 있을 수 없다"
2025-02-14
HaiPress
탐정소설 대가 챈들러는 왜 노벨문학상을 비판했나
레이먼드 챈들러는 20세기 탐정소설 대가로 꼽힌다. 챈들러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때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소설이란 도스토옙스키와 챈들러를 하나로 합친 것 같은 작품이다. 어쩌면 그게 나의 결승점인지도 모른다."
챈들러의 책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는 출판사 대표,편집자 그리고 독자와 나눈 챈들러의 편지 모음집이다. 그는 1인칭의 글에서 탐정소설 작가로서 느끼는 고충을 털어놓는다.
1942년 한 출판사 대표에게 보낸 편지가 그렇다. 챈들러는 '이중성의 시선'을 자주 느꼈다고 한다. 일단 그의 소설엔 폭력과 살인이 자주 등장한다. 사람들은 열광하면서도 챈들러를 욕했다. '자극적'이란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그 비판을 의식해 챈들러가 내용을 순화한다고 해서 비판이 끊이지도 않았다. 왜 그럴까.
"내가 거칠고 빠르고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글을 쓰면 사람들은 거칠고 빠르고 폭력과 살인이 난무한다고 욕한다. 그래서 다음엔 좀 순화해서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에서 글을 전개하면 사람들은 처음에 욕하던 그것들을 내가 쓰지 않았다고 또 욕을 한다."
챈들러는 이런 양면적인 평가 사이를 가로질러 오직 독자만을 지향하는 작가였다. 그는 대중의 취향을 제대로 알았다. 예술은 누군가의 호평보다도 그 글을 읽는 독자라는 대중과 친화적이어야 한다는 게 챈들러의 지론이었다.
"대중적인 취향을 반영하지 않는 예술은 있을 수 없다. 사회 구조 전반에 걸친 스타일과 특성을 감지하지 않고는,대중적 취향을 알 수가 없다."
챈들러는 그래서인지 노벨문학상에도 비판적 시선을 보냈다. 사람들은 챈들러를 노벨상급 작가로 평가했는데 그는 주변의 호평을 이렇게 받아친다. "이류급 작가들한테 노벨상을 남발하니 나까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스웨덴까지 가야 하고 차려입어야 하고 연설도 해야 하고…. 노벨문학상이 그럴 가치가 있는 걸까?"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독자에게 쓴 편지에서 챈들러는 일침을 가한다. "스스로 터득할 수 없는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배움을 얻을 수도 없다"는 고언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창작교육에도 회의적이었다. 오직 작품을 자신의 눈으로 분석하고 또 모방할 것,다른 교육은 필요가 없음을 깨달을 것. 그게 챈들러의 문학관이었다. "돈까지 내야 한다면 그건 수상쩍은 일"이란 이 책의 한 대목에 이르면 서늘한 웃음이 불가피해진다.
챈들러에게 소설은 배움도 창조도 아닌 그저 작가의 손에서 '자라나는' 것이었다. 쓰다가 막히고,또 쓰다가 또 막히면 그 작품은 버려야 한다고 챈들러는 일갈했다. 소설은 소설가의 손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자라는 나무와 같다는 깨달음이 이 책에 오롯하다.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