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2
바둑神 변신한 연기神 … 극장가 살릴 묘수 둘까
2025-03-20
IDOPRESS
이병헌 영화 '승부' 26일 개봉
세계 바둑 역사에 획을 그은
조훈현·이창호 사제대결 그려
조 9단의 담배 '장미' 4갑 등
탄탄한 고증과 재현도 주목
도전·응전에 관한 깊은 서사
영화 '승부'에서 조훈현 9단을 연기한 배우 이병헌. 이창호 9단과의 역사적인 사제대결을 다뤘다. 바이포엠
여기 두 신(神)이 있다. 한 사람의 별명은 전신(戰神),조훈현이다. 전투의 신인 그는 치열한 싸움을 즐겼고 상대를 끝까지 몰아대고 추궁하다 결국 이겼다. 그의 기보는 '싸우면 이긴다'로 압축된다.
또 한 사람의 별명은 신산(神算),이창호다. 그는 싸움을 회피하는 대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초인적 계산력으로 종반부의 미세한 차이를 도출해 결국 이겼다. 그의 기보는 '싸우지 않고 이긴다'로 요약된다.
물어뜯고 할퀴며 굴복시킬 것인가,정밀한 전략으로 마지막에 웃을 것인가. 이게 조훈현과 이창호의 차이였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한국 바둑사의 '쿠데타'로 평가받는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사제대결을 다룬 바둑 영화 '승부'가 26일 개봉한다. 탄탄한 고증에 기반한 시대극으로 도전과 응전,그리고 인생에서의 진짜 승부수를 사유케 하는 영화다. 19일 시사회에서 영화를 살펴봤다.
영화의 시계추는 '최초의 바둑 올림픽'으로 기록된 제1회 응창기(應昌期)배 바둑대회 현장을 향한다. 조훈현 9단을 연기한 배우는 이병헌.
싱가포르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그는 3대2로 역전승하며 세계 챔피언에 올라 금의환향한다. 이후 조훈현은 한국 바둑계의 독재자였다. 우승을 기념해 열린 아마추어 대회에서 조 9단은 한 천재 소년과 조우한다. 그는 놀란다. 답도 없는 사활 문제를 냈더니,며칠 만에 풀어 조 9단에게 응수한 것.
조 9단은 어린 창호를 제자로 삼기로 결심하고,연희동 자택에 데려와 동거동숙하며 가르친다.
'전신'이란 별명답게,스승의 기풍은 전쟁 일색이었다. '프로에게 자비란 없다. 끝까지 물어뜯어라.' 하지만 제자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대스승 아래서 혼자 길을 내던 중이었다. 바둑의 승부는 '집'의 숫자에서 난다. '반집(0.5집)'이라도 앞서면 이긴다. '안전하게 이기기'가 그만의 길이었다.
스승의 방식이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이라고 판단하는 제자와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스승. 하지만 말수 없는 제자는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와 스승과 결승전 대국장에 마주 앉는다.
조 9단과 이 9단의 '참혹한' 사제대결은 세계 바둑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극적인 한 편의 드라마였다. 영화 '승부'는 스승 조훈현의 타이틀을 제자 이창호가 전부 석권하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몰입도 높게 펼쳐놓는다.
스승의 절망,그리고 다시 '제자로부터' 타이틀을 가져오기 위한 기사(棋士)로서의 고투가 생생하다. 완벽하게 절망한 스승과 그를 방금 굴복시키고 고개를 푹 숙인 제자가 한 차를 타고 같이 귀가해 한 지붕 아래에서 '오늘의 전쟁'을 복기하는 풍경은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는 평가와 "나를 넘어선 제자를 길러냈으므로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초심을 영화는 함께 비춘다.
종로구 관철동 한국기원 내부 풍경,조 9단 자택 등 당대 시대상도 이 영화의 볼거리다. 한 번의 대국에 담배 '장미'를 평소의 두 배인 4갑이나 피웠던 조 9단의 미간 찌푸린 표정을 이병헌은 재현한다. 배우 유아인이 연기한 이 9단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다. 열 살 넘어서도 신발 끈을 매지 못했다던 이 9단,내로라하는 선배들을 죄다 절망시키고는 받은 대국료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던 '괴동(怪童)' 이 9단의 유년이 전부 생생하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반집'으로 바둑의 미학을 창조했던 이 9단의 고민도 짙다.
'승부'는 단지 사제대결 드라마로만 이해되진 않는다. 삶이란 승리하고 또 승리하다 결국엔 몰락하기 마련이고,그러나 다시 도전함으로써 '두 번째 산'의 정상에 서려는 쟁투의 여행임을 영화는 일러준다. 바둑을 모르더라도 용어 설명이 화면마다 친절해 이해하기에 어려움은 적다. 체스 천재를 다룬 넷플릭스 '퀸스 갬빗'의 한국판 정도로 이해하면 좋겠다.
영화는 관객 한 명 한 명의 마음속에 '집'을 짓는 일이 아니던가. 바둑판은 가로 19줄,세로 19줄로 361개의 집(칸)이 최대 수이지만,영화 관객 수는 사실상 무한대다.
영화 '승부'는 천만 관객 마음속에 집을 지을 2025년 영화계 최대 승부수가 될 수 있을까.
[김유태 기자]
면책 조항 :이 기사는 다른 매체에서 재생산되었으므로 재 인쇄의 목적은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지,이 웹 사이트가 그 견해에 동의하고 그 진위에 책임이 있으며 법적 책임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 사이트의 모든 자료는 인터넷을 통해 수집되며, 공유의 목적은 모든 사람의 학습과 참고를위한 것이며, 저작권 또는 지적 재산권 침해가있는 경우 메시지를 남겨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