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인간 대체해도 … 쭈글쭈글하게 살 필요 없잖아요"

2025-08-20     HaiPress

SF소설가 김초엽 인터뷰


바다·우주 배경 단편 7개 담아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 내


기계와 인간의 경계 무너지면


슬픔에서도 달콤한 맛 나듯이


소설 인물들 체념만 하지 않아

소설가 김초엽이 20일 서울 정동에서 새 소설집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곳. 내가 어떤 존재인지 신경 쓰지 않는 곳. 아무도 나에게 너는 왜 그런 존재냐고 묻지 않는 곳."


거대한 바다와 광활한 우주는 개인의 정체성이 무의미해지는 '익명의 공간'이다. 중력과 압력에서 해방됐기 때문일까. 한국 SF계의 거물이 된 김초엽(32)에게는 절대적 자유이자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인플루엔셜)로 돌아온 그를 20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 4년간 발표한 7편의 단편을 한 권으로 묶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한 줌 먼지처럼 만드는 두 공간에 특별히 끌리는 이유가 있을까.


"1인칭 관점에서만 보면 볼 수 없는 게 있어요. 그럴 땐 한번 멀어져서 다른 각도에서 나의 주관적 고통을 보고 다시 내면으로 들어가면 안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바다라는 공간은 지구에도 있고 외계행성에도 있어 친근한 공간이기도 하지요."


표제작인 소설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한 몸에 깃든 두 개의 자아를 이야기한다. '이중 자아' '자아와 타자아'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주인공 '샐리'는 또 다른 자아 '레몬'이 무의식 아래로 사라지자 그가 그토록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편안한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샐리에겐 공포의 공간이었던 바다가 레몬에게는 자유로운 공간이 되죠. 자유로운 공간이 또 누군가에게는 억압적인 공간이 되고,반대도 마찬가지고요. 양면성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소설은 복잡미묘한 인간의 감정과 현실을 매혹적으로 푼다. 슬픔과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던 세계도 뜯어보면 그 속에 반짝이는 것들과 자유로움이 동시에 존재한다.


"소설들을 다 모아놓고 보니까 제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요.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대체하면 어떻게 되지. 인간의 고유한 본질은 뭘까. 만약 고유성이 사라진다고 해도 슬픈 일인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굳게 믿었던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더라도 달고 미지근한 슬픔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슬픔에서도 달콤한 맛이 나듯이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체념만 하지 않는다. "제 개인으로 보면 현실 자체를 직시하고 문제해결을 빨리하는 편인데요. 소설을 쓸 때는 미래지향적이고 개방적인 것을 모아서 씁니다. 인물들의 태도를 조금은 앞으로 나아가게 하죠. 세상이 어둡다고 해서 쭈글쭈글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번 소설집에는 소수자와 장애인,안드로이드 등 '경계에 위치한 존재들'이 자주 등장한다.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는 안드로이드였다가 인간이 됐다가 다시 금속 피부를 달고 싶은 존재의 이야기다.


경계가 가진 매력은 무엇일까.


"인간은 모든 것을 범주화하고 쉽게 생각하려고 하죠. 뇌가 복잡한 걸 싫어하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뭔가를 규정할 때 구분 선은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흑과 백 사이를 들여다봐도 그렇고요. 그런 면에서 소설은 인간을 피곤하게 하지요."


그는 "소설가로서 어려운 문제를 만들고 스스로 해결해가면서 또 독자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싶은 욕망이 있다"며 "소설 쓸 때 고비가 많은데,고비를 넘어설 때마다 성취감이 있다"고 말했다.


'소금물 주파수'는 고래 그림이 널려 있는 고향 울산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고요와 소란'은 필립 파레노 전시와 협업한 작품으로 사물이 말하는 세계를 상상한다. '달고 미지근한 슬픔'은 '신체성'을 주제로 한 앤솔러지에 참여하며 쓴 소설로,감정과 감각이 인간이 아닌 다른 몸에도 깃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으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그는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 생화학 석사 출신으로 2017년 혜성처럼 문단에 데뷔해 SF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지구 끝의 온실'은 대표작으로 국내에서 수십만 부가 팔렸고 중국과 일본,대만 등에도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예술가인 부모님으로부터 예술로는 밥을 먹고살기 어려우니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죠. 그래서 과학을 공부했고,대학원에 가서 소설 창작을 시작했습니다."


슬럼프가 있었냐는 질문에는 "마감하느라 그걸 겪을 새도 없었다"며 "실제 실험하는 것을 빼면 소설 작업은 연구랑 비슷한 결이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논픽션도 많이 읽고 좋아하는 것을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낯선 것을 쓰려고 해도 결국 좋아하는 것으로 가게 되더군요. 그래서 '완전 낯선 것을 하자'고 머릿속에 박아놔야 하죠."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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